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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감각과 세계의 낯선 얼굴-[열린시학]2007. 가을호.
 신지혜  | 2007·11·23 03:09 | HIT : 4,809 | VOTE : 677

 

 

[열린시학] 리뷰1-2-007년 가을호.

 

 열린 감각과 세계의 낯선 얼굴

 

-박선영-

 

"그러니까 울 것 없어", 쓰다듬는 말들


 상냥한 표정과 세련된 예의로 무장하고 무심한 척 살아가는 현대인은 두껍게 쌓은 각자의 벽을 뛰어넘어 볼 용기가 없다. 그러나 유리벽을 둘러쓰고 매끄러운 삶을 일구는 타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면, 나와 비슷한 진흙탕에 넘어져 비틀거리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신지혜 시인은 단단해 보이는 유리벽이 사실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막일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집 『밑줄』을 읽다보면 잘 삭은 슬픔의 온기가 차가운 벽을 잔잔히 녹인다. 뿔뿔이 떨머진 채 외로움과 싸우다 지쳐 무감해진 마음을 따스하게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유랑하고, 또 시간마저 넘나드는 생명의 끈질긴 감촉이 모래알처럼 서걱대는 서로를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다.

슬픔인지 따스함인지 모를 느낌이 나와 타자를 갈라놓은 마지막 막을 뚫고 삼투해 퍼진다. 때론 끈적한 안개 때론 부드러운 공기알로 변하는 생명의 온기는 나의 감촉이기도 하고, 너의 감촉이기도 한 것 같다. 전 우주는 그렇게 서로 몸을 비비고 체온을 나눈다. 눈물을 데우며 "둥글게 부풀어
오른 정적"은 온몸으로 존재들을 쓰다듬는다. 손 내미는자와 손 잡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 위로의  감촉이 부드럽다.

시인은 자신이 "안개" , "공기" , "바람" , "물방울"임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내 뼈와 피의 원료 역시 차가운 안개"이며 "내 숨소리 귀 기울여 보면 안개들이 바스락거리며 깨어나는 소리, 말소리,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무정형의 존재들은 몸을 바꿔가며 다른 존재들에게 스며
들고, 전 우주를 왕래한다.

그리고 그렇게만 드나들수 있다면 지금 이 삶에서 받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의 흐느낌은 안개가 마땅히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모습 뒤에 고독과 마주하여 스스로를 다독이는 처연한 손길이 숨겨져 있음 또한
알아챌 수 있다.


비 맞으며 성묘 갔다 무덤 속의 네가 봄비처럼 말했다.

바보, 내가 없어도 햇빛 속에 바람 속에 안개 속에 구름 속에
내가 소곤소곤, 속닥속닥 살고 있지.
노래하는 수천의 입술이 바로 나란 말이야

                                                   -「흘로그램」부분

뻐근한 아픔이 번지고 번져,
한 마을의 토든 울타리가 지워진다 모두가
한 몸 안에서 황홀한 고통처럼 아름답고 은근한
毒이 번진다
                                                   -「내가 그린 달」부분


어디에도 견고한 것은 없다. '무엇'이라고 말했던 것은 결국 어디론가 흘러가버리지 않는가. 사랑했던 너마저도. 네가 변하지 않는다해도 내가 변하는 것, 어차피 모두 변해간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도 함께.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온갖 사물에게서 그 '무엇'으로변해버린 나와 너의 눈길을 보려 한다. 그러므로 변해버린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햇빛, 바람, 안개, 구름'의 감촉에서 너의 입술을 느낄 수 있으니·····"그러니까 울 것 없어, 울 것 없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마음이 환하다.

근원적 호흡과 진동을 느끼는것은 이렇듯 주체와 대상 간 공감을 이루는 일이다. "황홀한 고통"은 서로의 "울타리가 지워"져 "한 몸"이 될 때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모순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투명한 공기막 사이사이 단단한 적막의 얼굴들"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무너지는 어깨를 서로 부축하는 믿음직한 감촉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는다.

예민한 감각이란 타자를 더 잘 파악한다는 자만심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있음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집 『밑줄』에는 "온몸피부세포를 가동하며 날"아 올라 우주와 살을 비비는 비상의 환희와"현실의 그물망에 걸려 내 날개 찢길 때"의 아픔이 교차하고 있다. 늘환희와 아픔을 섞어서 내어놓는 삶, 시인은 그 잔을 매번 기꺼이 마시고"아름답고 은근한 독"이 온몸에 번지기를 기다린다.



◇ 박선영, '열린 감각과 세계의 낯선 얼굴'(계간 『열린시학』 2007.가을호「열린시학 리뷰」, p.389-391)


* 박선영:  2004년 《현대시학》평론 등단. 현재 성신여대 국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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